나는 마음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신의 많은 부분을 나타내는 말들이 독일어에는 무수하게 많지만, 이 말처럼 사람을 이끌수 있는 것이 그중에 없기 때문이다. 20대 전체를 나는 정신Geist라는 말에 얽매여서 살았다. 육체와 완전히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정신, 육체와 영원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기관으로서의 정신이 Geist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따르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정신이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은 자아다. 자아란 … 계속 읽기 마음의 번역어
[작성자:] Sool Park
사진과 마음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돈 주고 샀던 첫 카메라가 올림푸스의 C-220z 였는데, 아직도 수학여행에는 일회용 카메라가 대세였던 당시에 이런 카메라는 상당히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나는 전자기기에 대해서만큼은 얼리어탑터였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음악기기가 워크맨도 아니고 CDP도 아닌, MPman이라는 당시 최초의 MP3플레이어였다는 사실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지금보면 … 계속 읽기 사진과 마음
한해의 끝
올해는 이상한 해였다. 사실 올해가 한국에 "다녀온" 시간 전체를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길고 긴 시간이 하나로 쪼그라들어서 손바닥 위에 얹힌 느낌이다. 나는 시간을 꿰뚫어보지는 못하지만, 한 눈에 쥐고 쳐다볼 정도로 멀리까지 오는데는 성공했다. 그 시간의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윤곽은 이제 어슴푸레 볼 수가 있다. 2013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한국에 있었으니, 총 40개월을 보냈다. … 계속 읽기 한해의 끝
잡상 2016년 10월 12일
잘 모르겠다. 철학이라는 말은 탈리스만처럼 나를 나쁘고 불순한 것들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는데, 정작 대학의 강의계획서들을 읽어보니 내가 하는 일이 철학이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니체와 소크라테스의 싸움" 세미나 말고는, 진심으로 관심이 가는 철학과 과목이 단 한개도 없었다. 결국 비교문학과의 "번역이론의 문제" 강의, "번역이론들" 세미나, "하이데거의 숲길" 세미나를 듣기로 했다. 종교학과의 "식민주의와 종교" 강의를 듣기로 했다. 이번 학기에 … 계속 읽기 잡상 2016년 10월 12일
도보여행 – 로베르트 발저
(산문집 "시인의 삶"에서) 몇 해 전이었나, 지금 떠오르는 기억인데,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먼 거리를 도보로 여행했다. 그때 보았던 온갖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가진 장비로 말할 것 같으면, 몸에는 환한 색깔의 싸구려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곤색 모자를 쓰고, 손에는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안주머니에는 저축한 돈을 꿰매어 넣었는데, 깔끔한 은행어음의 형태를 한 … 계속 읽기 도보여행 – 로베르트 발저
도착에 걸리는 시간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상태에서 이 나라로 돌아왔다. 나는 무얼해야 할지 몰랐고 그것은 올바른 감각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했고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고,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없는 것nichts"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얼하러 온 것이 아니다. 장소와 언어를 바꾸는 것은, 음식과 공기를 바꾸는 것은, 부모와 연인을 바꾸는 것은 의지나 계획과 같은 얄팍한 말로 … 계속 읽기 도착에 걸리는 시간
잡상 20160714
혼자라는 말을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3년반은, 요약하자면, 혼자가 아닌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끊겨있던 모국어와의 재회였고, 언어의 중앙에 설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 하지 않았고, 멀게 느끼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배척하기도 했다. 나를 조종하려고 하거나 변화시키려고 했다. 수많은 뿌리들이 내 안을 움켜쥐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흙이 되었다는 느낌이 … 계속 읽기 잡상 20160714
잡상 2016 06 15
시간이 흐르고 있다. 군대라는 공간을 떠난지 2주일이 되었고, 떠나고보니 내가 얼마나 그곳에서 괴로워했었는지 알겠다. 마지막 한 해는 상당히 힘들었다. 자폐적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남은 수업을 하러 부대에 다시 들어갈 때마다 온몸이 경직되는게 느껴진다. 스스로와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수염을 자르지 않았고, 부대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를 경이롭게, 경멸스럽게, 경악스럽게 쳐다본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썼지만 하나도 자유롭지 … 계속 읽기 잡상 2016 06 15
잡상 2016 06 10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을 지켜보면서 나는 점점 입이 돌처럼 변해갔다. 모든 말을 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모든 종류의 말이 다 있어서 딱히 말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이 감각에서 나온 첫번째 반응은, (전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실없는 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단둘이 이야기를 하거나, 친밀한 분위기가 조성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아예 … 계속 읽기 잡상 2016 06 10
2010년의 노트들
2010년 9월 즈음의 일기를 보고 있다. 이때 나는 다시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사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석사논문을 열심히 썼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온갖 감정으로 넘치면서도 끝없이 이성에 의지하려는 모습이, 뭐랄까 안타깝다. 노트 한구석에 대단찮은 시도 적혀있다 Die Mädchen lachten; Mir war zumut Als hätt ich schon längst das Leben mit verschwendet. 여자애들이 … 계속 읽기 2010년의 노트들